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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지역 전문가 허브

고려대학교 글로벌인문학연구원 HK3.0 사업단은 본 사업단의 특별협력기관인 MIT 글로벌인문학이니셔티브(GHI)의 동아시아 지역 전문가 허브로서 “AREA EXPERT HUB: Philology 2.0 for Human Flourishing” 프로젝트에 참여 중이다. MIT GHI가 제시하는 “Manifesto for a Generative Philology: Philology 2.0 for Human Flourishing”은 다음과 같다.

생성적 필로로지 선언문: 인류 번영을 위한 필로로지 2.0
 
  • 필로로지(Philology)는 문자 그대로 "말(Words)", "논증(Arguments)", 혹은 "배움(Learning)"에 대한 "사랑(Love)"을 뜻하는 학문이다. 각 공동체가 특정 언어로 된 문자 혹은 구전 전통을 수집하고 이해하며 제도화하고 전승하는 방식을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에서 필로로지는 세계사 전반에 걸쳐 실로 다양한 형태로 꽃피어 온 예술이자 과학이다. 필로로지는 철학과 나란히 서양 학문의 제왕적 분과로 군림해왔는데, 그 기원은 기원전 3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집트 통치자들의 명을 받은 “필로로지스트들”이 알렉산드리아에서 고대 그리스 문학과 철학의 정전을 편찬하고 가르치기 시작한 것이 그 출발점이었다. 이후 필로로지는 성서 필로로지, “동방” 필로로지, 고전학, 비교언어학, 문헌 비평, 해석학, 서지학, 문학 연구, 인류학, 고고학, 고문서학(paleography), 금석학(epigraphy), 비교종교학 등 수많은 학문 분야를 파생시키며 폭넓은 영향을 끼쳐왔다.

    중국과 동아시아 같은 다른 거시 지역에서도 필로로지는 국가와 밀접하게 연결된 형태로 등장하였다. 한(漢)나라(기원전 206년~기원후 220년) 황제들은 황실 도서관을 정리하기 위해 서지학자들을 임명하였고, 이들은 이른바 “서적의 유가적 성전(聖傳)(Confucian hagiography of the book)”이라 부를 만한 체계를 발전시켰다. 이는 지식이 본래 하나의 원초적 통일성을 이루고 있었으나 위대한 성인 공자의 사후 파괴되어 여러 지적 계통으로 분화되었고, 그 계통들이 다시 고대의 정치적 관직들과 연결되었다는 거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한나라 이래 학자들은 유가 경전의 정전(canon)을 확립하는 한편, “경(經)·자(子)·사(史)·집(集)”이라는 네 가지 서지학적 범주에 따른 방대한 문헌 연구 및 저술 체계를 구축해나갔다. 이는 점차 “격물(格物)”, 곧 사물의 이치를 탐구하는 폭넓은 학문적 방법론을 통해 심화되었다. 동아시아 필로로지는 특히 발달된 주석 문화를 비롯하여, 편찬 및 판본학, 서지학, 고문서학, 음운학, 경전 해석학, 고증학, 문학 및 과학의 유서(類書), 서예·고고학·미술사적 감정학, 그리고 오늘날의 출토 문헌 연구에 이르기까지 탄탄한 전통을 일구어왔다. 그러나 이러한 분야들은 지난 수백 년간 식민지 혹은 반식민지적 상황 속에서 전 세계에 이식된 서양식 교육 제도에서 비롯된 오늘날의 학문 분과 체계 안에서는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 필로로지는 근시안적이고 남성 중심적이며 시대착오적인 학자들의 먼지 쌓인 텍스트에 대한 기묘한 집착으로 조롱받거나 희화화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최근에는 다양한 형태의 “세계 필로로지(world philology)”로 활발히 부활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필로로지가 인류 사회의 보편적 현상이며, 역사적 연계성과 기능적 비교라는 시각에서 충분히 탐구할 가치가 있는 풍부하고 다채로운 지역 전통들을 품고 있다는 인식이 점점 더 넓게 공유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금 우리에게는 필로로지에 대한 새로운 비전과 실천이 절실히 필요하다. 우리는 전 세계 전근대 사회에 대한 역사 연구 전반에 걸친 치명적인 예산 삭감에 직면해 있고, 집단적 기억상실의 심연 속으로 서서히 미끄러져 들어가고 있다. 오늘날 지구를 휩쓸고 있는 역사적으로 뿌리 깊은 민족 갈등과 종교 분쟁을 이해하는 능력도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정치인들로부터 학령기 아동들에 이르기까지, 어휘적·개념적·비판적·윤리적 문해력의 전반적 저하가 사회 곳곳에서 목격되고 있으며, 인공지능이 인류를 세뇌하고 교육 시스템을 무력화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 앞에서 우리는 깊은 불안에 휩싸여 있다. 바로 지금이 새로운 필로로지가 필요한 때다. 새로운 글로벌 생성적 필로로지, 인류 번영을 위한 필로로지 2.0이 요청되는 시대이다. GHI의 지역 전문가 허브(Area Expert Hub)는 현재 이 비전을 담은 선언문을 작성하고 있다.